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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동산 투기꾼의 고백

와일드델리 2024. 7. 14. 04:25


서울 송파에 사는 김대성(53)씨는 기획부동산업체 사장이다. 큰 땅을 싸게 산 뒤 여러 필지로 쪼개 영업사원을 동원해 비싸게 파는 일을 한다. 


3∼4년 전만 해도 양평․용인․가평 등의 수도권 땅을 주로 팔았지만 요즘엔 강원도 홍천, 충남 서해안 땅을 주로 판매한다. 요즘 규제가 강화돼 토지시장의 형편이 10여년 전 만 못하다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땅을 쪼개 팔아 적지 않은 수익을 챙기고 있다.  


좋은 땅이 나오면 쩐주(錢主: 돈대는 물주)에게 연락해 실탄(계약금)을 지급받는다. 이 돈으로 지주와 계약이 성사되면 본격적으로 땅 분양을 시작한다.  이 씨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대개 믿을 만한 '바지 사장(명목상 사장)'을 내세운다. 나중에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다. 


바지 사장 밑에는 일명 '땅개'로 불리는 상무급이나 전무급의 팀장이 있다. 이들 밑에는 '공격조'라고 불리는 분양사원들이 있다. 이들 땅개가 동원 가능한 인력은 최대 50명에 이른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춘 기획부동산업체를 업계에서는 ‘이무기’라고 부른다. 이 사장은 이런 '땅개'만 10여명을 거느리고 있는 '이무기'급 업자로 꼽힌다. 


주변에선 이 씨보고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지금 전국토가 투기장화 돼 있는 비정상적인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화국에 살면서 투기꾼 소리 듣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위 공무원들이 부동산 투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던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보면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런 고위공직자들이 하면 부동산 투자고 일반인들이 하면 투기란 말에 이 씨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전국이 부동산투기 광풍에 휩싸여 있는 마당에 뭐가 투자고 뭐가 투기인가?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는 면에서는 다 똑같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이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몇 군데 직장을 다녀봤다. 집안 배경도, 학벌도, 재산도 없는 나로서는 맘에 드는 직장을 갖는 것도 힘들었고 대부분 영업하는 일을 주로 했다. 5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던 중 94년 봄에 우연히 부동산 하는 고향 선배를 따라 일산신도시 상가 분양 현장을 따라가면서 이 씨의 인생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됐다. 


물 좋은 분양 현장에 수 천명씩 몰려드는 모습은 그에게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실수요자보다는 전국의 부동산업자들이 총 출동한 듯한 분양현장에서 하루에 계약금으로만 수 십억원이 오갔다. 

 

층에 따라 약간씩 틀리지만 현장에서 수 백~수 천만원의 프리미엄이 얹혀져 거래되고 있었다. 당시 세일즈맨으로 월급 100만원이 채 안되는 이씨는 자신이 초라해졌다. 


이 씨는 한달 뒤 괜찮은 분양현장에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500만원으로 상가를 계약한 뒤 하룻 만에 1000만원의 웃돈을 받고 되팔았다. 하루만에 연봉을 번 것이다. 눈이 뒤집혔다. 


그후 전국을 누비며 실전경험을 쌓는 한편 부동산 관련 법공부도 열심히 했다. 2년 정도 선배를 따라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각종 투자수법을 배웠다. 분양 현장에 따라 손해를 볼때도 있었지만 승률이 7할대에 육박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2000년 5월 선배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팀을 구성했다. 기획부동산업계의 불문율중 하나가 ‘고양이를 데려다 먹여주고 가르치면서 호랑이가 될 즈음에는 놔줘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독립 후 토지로 눈을 돌렸다. 


토지시장으로 눈을 돌린 뒤 맨 처음 손댄 게 경기도 파주 땅이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파주시에 LG필립스 LCD 공장이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월롱면에 7만㎡의 임야를 확보한 뒤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10억원에 산 땅을 40여필지로 쪼개 30억원에 팔았다. 이 땅은 2년 사이 10배 이상 올랐다. 주변에 부품, 하청업체 등의 수요가 많다보니 땅값이 급등한 것이다. 


이 씨를 통해 땅을 산 사람들도 덩달아 재미를 톡톡히 봤다. 3.3㎡당 15만원에 분양받은 땅이 주변 개발호재를 등에 업고 시세가 150만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이 씨 덕분에 짭짤한 시세차익을 챙긴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이 씨의 충성스러운 고객이 됐다. 이 씨가 작업하는 땅 마다 이들과 이들이 소개한 투자자들까지 몰려 대박을 터트렸다.

 
2000년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 쓰고 서울과 경기도 그린벨트지역에 몇 군데에 땅을 사뒀다. 이들 땅은 그린벨트에서 해제되면서 현재 수십배까지 가격이 뛴 상태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사둘 그린벨트가 특히 짭짤했다. 

 

이 씨는 가끔 북한산 등산을 다니며 이곳을 지나다니다가 언젠가는 풀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곳에 구옥 2가구(대지 991㎡)를 샀다. 투자한 돈은 고작 1억2000만원. 


이 일대가 지난해 뉴타운으로 조성되면서 땅 값이 엄청 폭등했다. 요즘 진관동 일대 땅값은 대지의 경우 평당 400만원이 넘는다. 이렇게 이 씨가 사둔 그린벨트는 의왕․고양․부천 등에서 6만㎡가 넘었다. 이들 땅은 현재 200억원대를 호가한다.